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오히려 더 분주하고 힘든 나날이었지요.
 
  햅쌀로 송편은 빚으셨나요? 명절 풍속도 사뭇 변해가고 있어요. 모여서 음식을 장만하던 모습도 자꾸 사라져 갑니다. 저희 시댁도 해마다 명절 전날부터 모여서, 동서들끼리 함께 부침개를 하며 남편 흉도 보고 그랬는데, 올해는 각기 음식을 맡아서 추석 당일에 모였답니다. 전을 맡은 동서는 너무 바쁜 나머지 사왔다고 하더군요.

  그런 와중에도 짬을 내서, 가까운 곳에 좋은 산책로가 있다고 들었다는 남편을 따라나섰습니다. 수변공원이라는 말에 편한 샌들을 신은 맨발차림이었지요. 그런데 가보니 호수를 둘러싼 구불구불 야산길이 만만치 않더군요. 3시간은 족히 걸리는 코스였습니다. 반절쯤 걷다보니 샌들과 마찰이 있는 엄지발가락 아랫부분이 붉게 부어올랐습니다. 자칫 물집이 생길 것 같았지요.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어요. 와아, 맨살의 감촉이 참 좋더라고요. 땅 기운이 그대로 올라오면서 가슴까지 시원해지데요.

  하지만 발걸음이 조심스러웠습니다.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고 잔돌들이 상당히 배기더라고요. 같이 가던 남편이 그러다 발을 다칠 수 있다며 양말을 벗어 줬어요. 이상하지요. 기껏 한 겹 신었을 뿐인데 어찌나 마음이 놓이든지, 성큼 성큼 걷게 되고 발바닥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여 남은 길을 걸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가족이란 이런 것이구나. 소소한 마음 씀이 보호막이 되어 인생길을 편히 가게 하는구나.

  이번 명절에도 친정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오디를 나눠주셨습니다. 설탕에 재워두신 것이지요. 이십 리터 큰 통이 엎어져서 온 주방이 난리가 나기도 했다 네요. 자식 숫자만큼 다섯 개의 통속에서 여름 내내 오디가 숙성되었겠지요.

  은퇴하시면서 밭에 뽕나무를 심으셨거든요. 오디를 수확할 때가 되었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전화를 드렸더니 뽕나무 밭에 계셨어요. 밭으로 가보니 어느 새 뽕나무는 나보다 두 배 이상 훌쩍 자랐는데, 주렁주렁 열린 오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병에 걸린 것이에요. 곰팡이류 일종인 균핵병인데, 가능하면 농약을 쓰지 않으려고 한 것이 그만 많이 번져 있었습니다.

  그 중 병에 걸리지 않고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고 계셨던 게지요. 며칠째 혼자서 캄캄해질 때까지 따셨다고 했어요. 한 줄씩 맡아서 가다보니, 먼저 다 따신 아버지가, 내 줄 끝으로 들어와 만나지곤 했습니다. 같이 따니까 어둡기 전에 마쳐서 좋았지요. 집에 누워계신 어머니 걱정에 마음도 못 놓고, 혼자서 얼마나 적적하셨을까요. 병든 오디를 보며 얼마나 애달아 하셨을까요.

  다행히 올해는 오디가 병에도 덜 걸리고 제법 많이 열려서, 자식들에게 따가라고 했지만 어디 쉽게 올 수 있어야 말이지요. 결국은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서 따다 먹게 했지만, 그 틈에도 오디 효소를 만들어 두셨네요. 거동이 힘든 어머니의 투정도 언제나 흔쾌히 받아주시는 아버지! 주변사람들로부터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들을 때, 전 제일 기분이 좋답니다.

  행여 식구들을 나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소홀히 대할 때가 있지 않나요, 남들에겐 잘해주면서 가족들을 함부로 대한다면 그건 정말 큰 잘못입니다. 사랑하는 그 이유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는 관계가 가족이잖아요. 고난을 당하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여름 더위가 지나가듯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생각으로...

  힘내시게요.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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