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습니다. 과연 그 일이 이루어질까, 노심초사 하지만 전혀 어림잡을 수 없으니, 막막한 심정입니다.

  혹, 백두산 천지를 보셨나요?

  정상에 백색 부석이 얹혀있어서, 흰머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지만, 백번 가면 두 번 만날 수 있는 곳이라서 백두산이라네요. 하루에도 수십 차례나 급변하는 기상 때문에, 천지의 경관을 볼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답니다. 난데없이 구름이 몰려와 비가 억수로 쏟아지다가도, 갑자기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기도 하며, 순식간에 다시 비구름에 휩싸이기도 한다는군요.

  꼭 천지를 보리라, 이번 여행의 목표였지요. 그래서 하루는 서파로, 또 하루는 북파로, 천지 가는 일정을 두 번 잡았습니다. 연길공항에 도착해서, 천지를 향해 네댓 시간 버스로 달려갔지요.

  계속해서 밀림 속을 지나가는데, 하얀 꽃으로 뒤덮인 큰 나무들이 자주 보이데요. 그 나무를 쳐다보느라 계속 고개가 돌아갔어요. 나, 여기 있어요, 외치는 듯한 절절한 모습이었거든요. 궁금했지요. 무슨 꽃이지?

  알고 보니 그것은 꽃이 아니고, 잎이 색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바로 개다래넝쿨인데요. 꽃이 작아서 잘 드러나지 않으니, 잎을 치장하여 벌과 나비를 부르는 것이랍니다. 이렇게 잎의 색이 바뀌는 것을 혼인색이라 불러요. 간혹 참다래의 분홍색도 있었지만, 개다래의 흰색 잎이 두드러지게 많더군요. 수정을 마치고 열매를 맺게 되면 본래의 녹색으로 되돌아간답니다. 잎을 들춰보니 손톱보다 작은 흰 꽃들이 줄지어 피어있어요.

  그런데 어라, 이 녀석 혼자서는 꼿꼿이 설 수 없는 덩굴 식물이네요. 넝쿨을 길게 뻗어서,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갔어요. 그래서 무성하게 잎을 내고 꽃을 피웠고요. 그럼 됐잖아요. 그런데도 잎의 색깔을 전부 바꾸다니요. 하찮다고 이름에 '개'자가 붙은, 녀석의 열심이 전해져와 가슴이 뜨겁데요. 자신의 처지를 아랑곳 하지 않고, 맘껏 드러내는 자유를 보았어요.

  다음날 아침 일찍, 천지를 보려고 서파 산문으로 들어갔는데, 도중에 폭우를 만났어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휴게소로 피했다가, 비가 좀 긋는 틈을 타서, 비옷을 입고 서둘러 올라갔지요. 아직도 눈덩이가 남아있는 산비탈을, 만병초 꽃이 다 차지하고 있더군요. 거센 비바람에 바짝 엎드려있지만, 오지게도 피었네요, 외진 곳이면 어떻고, 척박한 땅이면 어때요. 그 모습을 보면서 힘든 것을 참고, 천사백 여개의 계단을 올라갔어요. 그랬는데 잠깐 구름이 걷힌 틈을 타, 어슴푸레한 천지를 살짝 봤을 뿐이네요.
 
  그 다음날엔 날씨가 좋아서 기대를 안고 북파 쪽으로 올라갔어요. 차가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이 나서 편하게 천문봉까지 올라갔지만, 그러나 천지는 볼 수 없었답니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서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거든요. 너무 아쉬웠지만 두꺼운 안개와 거친 바람 때문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바랬던가요. 모든 일정을 제치고 왔는데요. 천지를 만나면 맺힌 것들을 풀어 놓고 오리라 했어요. 봄이 왔다가 간 것도 모르고 살았지요. 가장 힘겨웠던 건 주변 사람들이었어요. 진심을 비껴갈 때가 얼마나 많던지, 그저 쓴웃음을 삼키곤 했습니다. 가슴에 고인 눈물을 천지에 풍덩 빠쳐 놓고, 속 시원해지리라 했는데, 그리고 당신도 잘 있느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모두 접어야 했네요.

  섭섭한 마음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발끝에 힘을 줍니다. 다시 열심히 살아야지요. 걸림 없고 한정 없는 자아가 커지면, 그래서 더 큰 것을 품으면, 문제는 작아져요. 그저 중심을 잃지 않고 잠잠히 바라보려고요. 자유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는 힘이잖아요. 선하게 이루어 가시는 신의 인도를 따르며, 두려워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잠자코 펼치려고요. 자유는 무한한 에너지를 가졌어요.

  저도, 개다래 혼인색으로 물들고 싶어요.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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