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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 소방서를 방문하다

 

대체휴일까지 끼어 있는 지난 추석연휴는 근로자에게 있어 모처럼 '황금연휴'였다.

  시민들에게는 모처럼 여유롭게 가족 혹은 친구·연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휴일이지만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시민들을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맡은바 임무에 충실해야만 했다.

  푸른 하늘과 아침햇살이 유난히도 빛났던 지난 24일 추석, 간략히 차례를 마치고 '일일소방체험'을 위해 소방서를 찾았다.

  고백컨데 기자의 '일일소방체험'은 추석연휴 하루 전 "남들 다 쉬는 날 고생하는 분들 취재나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에 즉흥적으로 결정된 사안이었다. 당연히 사전준비도 미흡했을 뿐더러 막상 추석 당일이 되자 "괜히 소방체험을 하다고 했나?" 싶을 정도로 귀찮은 마음에 소방서로 향하는 발걸음이 꽤나 무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철없는 생각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오직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소방관들을 마주하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으며, '내가 너무 어리석었구나'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얼굴이 붉게 상기되면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오전 8시 30분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들고 소방서 앞에 섰다. 그 순간 소방서의 모든 차량에 불이켜지고 동시에 싸이렌이 울리며 많은 소방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체험 시작부터 모든 차량이 출동할 만큼의 뭔가 스펙타클한 일이 발생했나 보다" 생각하며 이들 무리에 합류하기 위해 황급히 소방서로 뛰어 들어갔다. 소방서 내부는 외부의 분주한 상황과는 다르게 이들과 합류 해보겠다고 불과 50여m를 한달음에 뛰어온 탓에 목전까지 차오른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기자가 이방인처럼 느껴질 만큼 너무도 평온한 분위기었다.

  '업무교대 시 모든 장비 정상작동 확인' 소방서는 만일의 사태에 신속·정확한 출동을 위해 하루 2번 업무교대 시 모든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교대점검을 한다. 이는 응급상황 시 장비고장으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요란스러운 환영인사에 살짝 당황했지만 일단 큰 일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쉰 후 현장대응단 사무실의 문을 노크했다.

  사무실도 이제 막 업무교대를 마친듯 차분한 분위기 속에 인수인계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늘 해야 할 일과 소방관들의 노고를 숙지한 후 오전 9시 소방서 1층 응급구조 상황실로 내려갔다.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당직근무로 인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것으로 예상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교대점검'에도 놀라는 겁많은(?) 기자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이들에게 원론적이면서 또한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힘들지 않으세요?", 너무 뻔하지만 그런 뻔한 질문을 서슴없이 던진 기자와 질문을 받은 구급대원 사이에는 서로 눈 깜빡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잠시 흘렀다.

  그는 "출동이 없는 시간에는 다음 출동을 위해 휴식 등 출동준비를 했으면 좋겠지만 매일같이 상급기관으로부터 하달되는 각종 행정업무를 병행하고 있어 많이 지친다"면서 "다른 지자체에 비해 유난히 전북도가 BSC(균형성과평가제도)가 과중하다"고 전했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죽산면 00리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요구조자 발생"
  이들이 명령을 하달 받고 구급차에 오르기까지 시간은 단 20초 남짓이였다.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매우 응급상황이었다. 기자를 태운 구급차는 굉음을 내며 현장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이들은 상급기관과 꾸준히 연락을 유지하며 요구조자의 정확한 위치와 현 상태를 확인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손에 땀이났다.

  오전 9시 45분, 현장에 도착해 구급대원들과 같이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한 60대 남성이 누워있었고 곧바로 응급조치가 이뤄졌다. 구급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남성에 다가가는 순간 상당히 익숙한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술...

  만취한 남성이 술을 못이기고 구급차를 부른것이다. 순간 긴장이 풀리며 이곳에 오기까지 신호위반과 속도위반 등 나름 죽을고비를 넘겨온 순간들이 눈 앞에 펼쳐지며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기자는 구급대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열에 일곱 여덟은 주취자에요, 이 분들 때문에 정작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환자들이 구급서비스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병원으로 안전하게 이송 후 현장으로 복귀하자 곧바로 "구급출동, 구급출동 요촌동 00여관에서 자살시도, 경찰관 출동 요청사항 입니다"라는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또 주취자 였다. 게다가 이번 구조요청자는 최근 3개월 내 4번 구급차를 이용한 단골손님이었다. 그는 "자신이 다니는 병원이 있으니 그 병원으로 이송해달라"는 특별한 맞춤형 주문까지 곁들였다.

  결국 그가 입원해 있는 00병원으로 이송을 마치고 복귀한 시간까지 총 1시간 40분이 흘렀다. 무서운 사실은 그 시간 동안 소방서에는 구형 예비 구급차 1대가 있었으며, 그마저도 구급출동을 나간 상황이었다. 만약 그 시간에 정말 응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신태인이나 만경읍에서 구급차가 출동해야 하는 상황으로 주취자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됐다.

 

연달아 2건의 출동으로 혼이 빠진 기자는 소방서로 복귀 후 허기진 배를 채우려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는 소방관들이 직접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찬은 찌개와 김치, 배달음식이 전부였다.

  이들의 식사시스템은 소방관들이 비용을 각출해 아주머니를 고용하는 형식이다. 그마저도 기자가 방문한 당일은 추석이라 아주머니가 출근을 하지 않아 식사준비부터 뒷정리까지 모두 소방관들의 몫이됐다.

  식사후 잠시 여유가 생겨 오전에 이곳에 오면서 눈여겨 봤던 외벽훈련장에 들렀다. 때마침 점심시간을 활용해 산악 레펠훈련을 하고 있는 소방관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평소 이렇게 연습하지 않으면 실전에 닥쳤을때 당황하게 된다"면서, "소방관이 현장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시민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길을 지나다 잠시 들른 꼬마손님 접대도 그들의 몫이다. 그들은 울긋불긋 덩치 큰 차를 신기해 하는 꼬마손님을 위해 소방차 내부를 구경시켜 주기도 한다.

  오후 시간은 비교적 한가했다. 잠시 사색을 즐기는 사이 또다시 구급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백구면 학동교차로 교통사고인데 시민이 차게 갇여 구조를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예상대로 명절 당일 귀성객으로 인해 도로는 인산인해를 이뤘고 구조요청자의 애타는 심정을 대변하듯 열심히 싸이렌을 울리며 현장으로 향했지만 소방차를 본 채 만 채 하는 시민들이 상당수 목격됐다.

  뒤에서 지켜보는 기자가 더 마음이 급해졌다. 다행으로 현장으로 이동중 상황이 해결됐지만 소방서로 복귀하는 것이 더 문제였다. 빨리 복귀해 다음 출동준비를 해야 하는데 복귀중에는 싸이렌을 울릴 수 없기 때문에 귀성차량속에 파묻혀 느릿느릿 이동해야만 했다.

  

이날 김제소방서에는 구급출동 14건을 비롯해 총 20여건의 출동사건이 있었다.

  "명절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일터로 나온 소감이 어떠세요?" 제일 궁금한 질문을 먼저 던져봤다.

  "저에게 있어서는 명절도, 휴일도 아닌 그냥 달력에 빨간색으로 칠해진 날일 뿐입니다" 그의 던진 한마디 말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지 모를 묵직함을 느끼며, 저 멀리 서산 넘어 기우는 해를 한참 바라봤다.

남성훈 기자  nam3055@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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