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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80. 새순

 

사진 : 나인권

'잠깐만'
  밖에 대고 소리를 질러놓고, 동당거린다. 커피 좀 챙겨야지, 물도 한 병, 토마토도 씻어서 주섬주섬 양손에 들고 서둘러 나왔는데, 운동화가 신발장 안에 있네. 에이, 진작 나와 있었으면서 좀 꺼내놔 주면 어디가 덧날까. 곰살궂은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무뚝뚝한 데다 성질까지 급하니, 원.

  삼십여 년을 함께 살아왔으니 이물 없어질 때도 됐으련만, 아직도 덜커덕거린다. 못내 섭섭하다. 속 좁은 모지리라 그렇지. 지천명에 입문해서 쉰의 말미에 이르렀으니 그러려니, 느긋함을 즐기게 될 줄 알았는데, 웬만한 것들은 안에서 곰삭으려니 했는데, 아직도 설익었다.

  어쨌거나, 밖으로 나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어디서나 움찔움찔 새순이 나오고 있어서 그런가. 생명이 약동하는 속도가 보인다. 모든 것을 다 떨어내고 빈 몸으로 겨울을 난 나무가 데려온 봄은, 주춤거리지 않고 하루하루 다르게 새록새록 자란다.

  아하, 리셋 해야 새로 시작할 수 있구나. 무성하게 달고 있었던 것을 다 버리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던 나무가, 다시 시작하지 않는가. 코로나19의 결과로, 우리를 지배했던 환경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엄청난 이 일을 겪으며 우리는 자중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위대한 전환점을 맞은 것이다. 이뤄온 삶의 방식을 돌이켜서, 처음부터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다. 힘겹고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새롭고 경이로운 시작의 발판이 되는 것이다.

  산에 드니 신선하다. 깊은 호흡으로 이산화탄소를 내놓고 산소를 들이마신다. 주말마다 남편을 졸라, 일찍 일어나 한적한 산에 온다. 불과 지난 주말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도 거의 시들었다. 허망하고 아쉽다. 그래, 젊은 시절도 잠깐이었듯이, 덧없으리라. 꽃 시절을 보내버리고 조금은 추레해진 모습이, 영락없이 누굴 닮았다. 시간이 많은 줄 알았지.

  그래도 지는 꽃의 평온함을, 이 나이가 아니면 알리 없겠지. 더구나 나무마다 새순을 달고 있지 않은가. 산빛이 제일 아름다울 때다. 어쩌면 저리도 다양한 연두색이 있으랴. 당신이 젤 좋아하는 색이네, 하고 남편이 옆에서 거든다. 하늘을 배경으로 올려다보니 나뭇가지마다 생기가 돌아 몽글몽글하다. 출발선에서 땡하고 달려 나갈 기세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새순을 비벼 본다. 그 연한 기운이 건너와 마음을 순하게 한다. 괜한 일에 씩씩댔네. 거실에 있는 큰 잎이 두툼하고 뻣뻣한 벵갈고무나무가 생각난다. 하지만 새순이 나올 때는 얼마나 여린지, 그 옆에 서서 만져보곤 한다. 아기 볼을 만져보는 기분이다. 세상, 이런 부드러움이 또 있을까. 잔걱정들이 어느새 책꽂이에 꽂힌 책처럼 조용해져 버렸지.

  꽃비가 맞고 싶었다는 말에, 남편은 꽃잎이 아직 남아있는 벚나무 아래 서라고 하더니, 가지를 흔들어 주었다. 세 번이나. 새벽에 온 비로, 빗물도 함께 후두두 떨어졌지만, 순간, 우주가 아름답게 빛난다. 하얀 꽃잎들이 내리는 모습은 기도처럼 정결하고, 봄볕같이 다사롭다.

  하루하루 살아있음이 왜 이리 아름다운가. 아까운 시간을 어찌할까. 정년퇴직이 다가오는 게 무섭다고, 속엣말을 꺼낸다. 영원할 것으로 여겨지던 삶의 경계점이, 저만치일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 같다. 이제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야 한다. 나무처럼 다 떨구고 새순을 낸다면, 삶이 그리 신산하지는 않을 텐데.

  앞으로 봄은, 몇 번이나 맞을 수 있을까.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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