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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85. 꽃무릇
 사진: 나인권

  가을이 온 것을 제일 먼저 손이 알아요. 뻣뻣해져서 핸드크림을 찾게 되더라고요. 유난히 살성이 건조해서 애를 먹죠. 특히 발뒤꿈치는 말도 못해요. 쩍쩍 갈라져서 꺼끌꺼끌한데, 남편 허벅지를 긁으니 질색을 하네요. 어휴, 장난 좀 친 건데 무뚝뚝하기는. 

  아무튼, 저에겐 딸이 하나 있는데요. 어지간히 속을 썩이는 녀석이죠. 어휴, 사춘기를 지날 때 생각하면, 진저리가 나요. 싸우다가, 둘이 끌어안고 엉엉 울어버린 적도 있어요. 제 고집만 앞세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 잔소리를 엄청 싫어해요. 그래도 어떻게 그냥 놔둬요. 버릇을 고쳐줘야 하고, 살림도 가르쳐야 하고, 엄마 노릇을 해야죠, 안 그래요? 그래서 말 좀 예쁘게 해라, 자세를 반듯이 해라, 입이 아파요.

  그런데요. 이 녀석이 얼마 전에 풋크림을 하나 샀어요. 인터넷에서 요즘 제일 핫한 물건이라나 뭐라나. 그러더니 밤에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제 발에 그걸 발라 줘요. 그것도 매일 '엄마 발을 맨들맨들하게 만들어 줄게', 하면서 말이지요. 

  이건 좀 말하기 싫지만, 전에 친정엄마가 하신 말씀이 있어요. '시집가면 절대 양말을 벗지 말아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요, 얌전하게 처신해라 그런 뜻이 아니고, 발이 못생겼으니까 보여주지 말라 그거에요. 발가락 길지, 쫙 벌어져 솥뚜껑 같지, 그래서요. 하지만 뭐, 요즘은 양말 안 신는 것이 흉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보든지 말든지 거침없이 맨발로 살았지만요. 어쨌든 억지로 구두를 신어서 겹쳐진 발가락에 굳은살이 붙었고, 바닥에 티눈도 생겼고, 발톱까지 시커메서 볼만해요.

  그래서 내박쳐두고 살았죠. 얼굴에 화장하는 것도 귀찮은데, 발까지 어떻게 챙겨요. 그런데요, 발에 크림을 듬뿍 발라서 밤마다 문질러 주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발가락까지 비비고 주무르고, 오오, 어떤 이는 축구 경기를 볼 때 오르가슴을 느낀다던데, 그 보드라운 손으로 어루만지니 도파민이 쭉쭉 분비되더라니까요. 그냥, 하루 피로가 싸악 가셔요. 왜 그리 딸이 예뻐 보이는지, 지금까지 애간장 녹인 것은 어디로 다 가버리고, 크면서 속도 한 번 안 썩인 딸로 변신해버리더라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반질반질한 발이 되었어요. 야아, 뒤꿈치가 여름에만 쪼끔 성하니, 가을이 오는 것이 참말로 걱정이었는데, 되려 보들보들해진 것이 신기해서 자꾸 만져보게 된다니까요. 엄마가 생각났어요.

  친정에 가는 길에 성산을 지나가는데, 빨간 꽃무릇이 벌써 지고 있네요. 이제 곧 그 자리에 짙은 녹색 잎이 돋아나겠죠.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다고 해서 상사화라고도 불리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있는 거죠. 가족도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끊을 수 없는 사랑을 가졌으면서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꽃무릇과 닮은 듯해요. 꽃말처럼, 사랑은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간직하는 거잖아요. 과묵한 아빠도 멀리 있는 자식도, 늘 알뿌리처럼 가슴에 박혀있는걸요. 

  누워계신 지 10년이 넘은 친정엄마는, 요즘 더 안 좋으세요. 거기다 가려움증으로 무척 고생하시네요. 대학병원까지 모시고 가봤지만 정확한 병명이나 치료 약을 찾지 못했어요. 사실, 엄마를 돌보시던 아버지가 큰 수술을 받느라, 엄마가 요양원에 서너 달 계신 적이 있는데, 그때 생겼어요. 상처가 나도록 긁어서 팔뚝이나 다리가 성한 곳이 없었지요. 아마도 심리적인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는 몸이 회복하시기도 전에 엄마를 집으로 데려오셨지요. 계속 긁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봐야 해요. 냉장고 넣어둔 로션을 시원하게 발라 드리고, 두드려주는 것이 고작이지만요. 

  엄마 발을 주물러드렸어요. 우리 딸이 해준 것처럼, 발가락 하나하나 꾹꾹 지압도 하면서요. 시원하다고는 못하셔도, 속으로는 좋으실 테죠. 몸과 마음은 한통속이니까요.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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