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방폐장 후보지역 선정

지난 2월 4일 정부는 김석수 국무총리주재로 원자력위원회를 열어 '방폐장' 후보지 4곳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자연환경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건이 양호하고 원자력발전소에 인접한 동해안과 서해안지역 이라고 밝힌 선정지는 경북영덕군 남정면 우곡리·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전남 영광군 흥농읍 성산리·전북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일대의 4개 지역이었다.

84년 이후 5차례나 부지선정이 무산됐던 '방폐장' 후보지역이 다시금 수면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정부는 이들 지역에 대한 철저한 지질조사와 사전 환경성 검토, 지방자치단체 및 주민과의 협의 등을 거쳐 동해안과 서해안지역 각 1곳씩을 최종 선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에 대한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해당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 등에서는 결사반대를 외치며 강하게 반발했고 후보지 선정발표는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5월 26일, 돌발사태 발생

영·호남 할 것 없이 반대의견이 대다수를 이루는 가운데 5월 26일 도내에서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강현욱 도지사가 핵폐기물 처리시설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지자체와 협력에 방폐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라고 밝힌 것이다.

그는 "최근 프랑스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방문해 안정성을 확인했다"며 "이런 시설의 유치는 양성자가속기 연계 및 3천억 규모의 자금지원 등 지역발전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의 여파는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반대급부에 휩싸여 골머리를 앓던 정부에게 강 도지사의 발언은 가뭄 속의 단비와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날 이후 이상 기류가 도내에 감지됐다.
당초 영·호남 각 1곳씩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한다는 분위기가 그럴 것 없이 호남 중 한곳에, 그것도 전북 쪽에 유치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도내 교수들로 구성된 과학기술자문단은 6월 1일 성명서를 내고 사업비가 1조원으로 추정되는 '방폐장'의 전북유치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상기류가 점점 먹구름으로 변해 가는 순간이었다.

모든 대학들이 여기에 의견을 같이한 것은 아니었다.
전주대·군산대 등 13개 대학이 찬성의견을 밝힌 가운데 전북대·원광대 등은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도의회에서는 '방폐장' 유치반대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는 것이다.

찬성의 분위기는 어디까지나 일부의 모습일 뿐 전체도민의 대다수 생각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6월 26일, 후보지 선정확대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아니면 미리 예정된 다른 구상이 있었던 것일까?

산업자원부는 '방폐장' 선정과 관련, 기존의 4개 후보지역 말고도 적합성이 인정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동등한 신청자격을 주고, 지자체장의 유치신청이 없을 경우에는 적합지역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해 터를 선정하기로 하는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확보 사업과 양성자 기반 공학기술 개발사업 연계추진 변경공고안'을 6월 26일 발표했다.

변경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가 7월 15일까지 유치 신청을 받아 기존의 4개 후보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신청이 들어올 경우 조사를 통해 지질 적합 판정이 내려지면 기존의 4개 후보지역과 동등한 우선권이 부여된다.

하지만 마감일까지 자율신청을 하는 지자체가 없을 경우에는 유권자 5% 이상의 청원이 있거나 지자체장이 주민투표 회부를 희망하는 경우 그리고 지방의회에서 유치를 결의하는 지역 등을 대상으로 7월말까지 주민투표를 실시해 투표자 과반수 이상의 찬성 지역을 최종 터로 선정할 방침이다.

7월 14일, 충격적인 유치신청

마감 일을 6일 앞둔 7월 9일의 분위기는 대략 군산과 강원의 삼척으로 압축되는 분위기였다.

군산은 새만금방조제로 연결되는 신시도를 후보지로 선정하고 6월에 지질조사를 실시한데 이어 인근 비안도에 대한 지질조사를 진행하는 등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삼척 역시 폐기물 관리시설을 유치할 경우 곧바로 정부예산 6000억원이 지원되는 등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는 호기가 될 것으로 보고 유치신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부안은 이때까지만 해도 주민들과 자치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예상후보지에서 철저하게 가려져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유치 마감일을 나흘 앞둔 11일 김종규 부안군수는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원전수거물 처리장 시설이 국책사업일 뿐만 아니라 이 시설을 유치할 경우 지역개발은 물론 변산반도 일대의 관광자원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최종 유치 신청키로 결정했다"고 밝히며 모두의 예상을 깨는 돌발행동을 보였다.

더욱이 그 동안 꾸준히 '방폐장' 유치를 반대해온 김군수였던지라 놀라움은 점점 충격으로 다가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한편 가장 강력한 후보지로 거론되었던 군산은 "신시도 지질 조사 결과 원전 수거물 처분장 유치에 부적합하다는 정부의 공식적인 통보를 받았다"며 유치 신청을 공식 철회했다.

그리고 14일 다른 어떤 지역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가운데 김군수는 단독으로 유치신청을 감행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부안 주민들의 필사적인 반대도, 부안군의회의 유치청원신청 부결도,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가 없었다.

산업자원부의 개정된 선정지침은 자치단체장의 신청만으로도 원전수거물 처리 시설지역을 선정할 수 있도록 돼있었기 때문이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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