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불어오는 뼈 속 시린 찬바람

사회 전체적으로 경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상징성 때문에 조금은 들뜬 분위기가 있었던 지난 24일.

'방폐장' 문제가 어느 정도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보이면서 표면적으로나마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던 부안읍내에서 잠깐의 정적을 깨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부안읍내의 한 모텔에서 잠을 자던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한 범 군민대책위 김종성(37) 집행위원장이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 의해 검거된 것이다.

김위원장은 지난 7월 군수사무실 난입사건으로 지명수배 된 이후 지금까지 부안성당에서 은신해오고 있던 중이었다.

그와 함께 잠을 자고있던 공아무개(45)씨와 김아무개(34)씨도 체포되었는데 이들 역시 김위원장과 함께 대책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있던 터였었다.

부안 주민들의 집회 및 반대시위를 사실상 주도해온 김위원장이 검거됨에 따라 대책위의 향후 투쟁노선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뇌부의 핵심을 잃은 상태에서 사상누각처럼 와그르르 무너져버릴지 아니면 전보다도 더 거칠고 사납게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안의 분위기는 다시금 평화를 되찾아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라치면 뭔가 이전과는 다른 기분 나쁜 바람이 뼈 속까지 시리게 불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부안 주민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의지의(?) 김종규 부안군수는 재경향우단체들 및 여러 관계기관들을 돌며 끊임없이 '방폐장' 유치 협조를 구하고있고 설상가상으로 '부안을사랑하는사람들(대표 김향)'이라는 원전센터 찬성단체까지 생겨나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부안을사랑하는 사람들'은 회원은 많지 않지만 무척이나 적극적이고 강하게 행동하고 있다.

특히 지난 25일부터 실시하고있는 부안∼서울간 도보행진은 다시금 부안 지역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킬 조짐의 씨앗을 엿보이게 한다.

이 단체회원 30여명은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및 양성자가속기 등 2대 국책사업 부안군 유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국도를 따라 서울까지 행진하는 장장 17일 간의 대장정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경유하는 시·군에서 원전센터 유치홍보활동을 벌이는 한편 산자부와 청와대, 국회, 경찰청 등을 방문해 유치 건의문을 전달할 예정이다.

어린아이부터 백발노인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부안 군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전국의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던 촛불정신이 잠시 흐트러진 틈을 타 엄청나게 차가운 바람이 강렬하게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방폐장' 지금 당장 세워져야 하는가?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소요면적의 95% 이상은 중·저준위 폐기물질용이다.

저준위 폐기물은 현재 각 원자력 발전소별로 간단한 시설 속에 몇십 년 간 보관되어있지만 현재까지 특별한 사고 없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

필요시 주변시설을 확장·보안해 사용한다면 앞으로도 몇십 년간은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현재의 핵 처리 관련기술발전속도로 가늠해본다면 한 드럼 분량의 폐기물을 작은 유리병에 압축시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이 기술은 핵발전소를 운용하는 일부선진국에서는 이미 상용화되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역시 핵 산업에 대해서는 낮은 수준이 아닌지라 당장 기술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향후 20년 후를 생각하면 경제성과 기술 모든 면에서 폐기물의 완벽한 처리방식이 나올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다소 간접적인 중·저준위 폐기물에비해 고준위 폐기물은 조금 더 직접적이며 위험하고, 때문에 신경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다.
목욕하는 사람에 비유한다면 고준위 폐기물은 땀이나 때로, 저준위폐기물은 먼지 묻은 옷가지나 수건 등으로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준위 폐기물은 상대적으로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저준위 폐기물에 비해 높은 위험성을 감안한다면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있던 장소에서 처리하는 것이 안전성 부분에서도 훨씬 현명해 보이리라.

모든 원자력발전소는 애초부터 넓은 부지를 끼고 사회와 격리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고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을 발전소별로 몇 배 확장한다해도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런 저장시설의 확장은 별도의 폐기장 건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절감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어딘가에는 세워져야하기 때문에 양보하는 미덕이 필요하다"는 말로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기에는 도처에 깔린 대안들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국민과 함께 걷는 지혜로운 길이 되기를…

여러 가지 문제점을 따지기 전에 핵은 20세기 과학기술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당분간은 그 중추적인 역할에 설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아무리 위험성을 가득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국민의 실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조금 더 국민과의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핵을 바르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하겠다.

휴전상태(?)에 들어가 있는 '방폐장' 문제가 이렇게 시끄러운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부치기식 태도 때문이었다.

국민들의 전반적인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반대의견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충분한 이해 없이 강행하고 보자는 식의 정책추진은 더 심한 반발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아무리 '방폐장'이 문제가 있다고 하나 정말 그것만이 국가를 위한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되면 무턱대고 반대부터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7년 전부터 '방폐장'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정부였지만 한번이라도 해당 지역주민들과 토론을 통해 부지를 선정한 적이 있는가?

어쩌면 현재성에 젖어있었을 수도 있고 이것저것 골치 아픈 몇 갈래 길을 스스로 귀찮아한 것은 아닌지 반문해보고 싶다.
어렵다, 많이 어려울 것이다.

핵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그렇고 핵 시설이 있는 지역의 현재 보이는 모습들에서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평화와 안전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국민정서와 그들의 미래에 대한 보장확보에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거나 겪고있는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리모델링이 필요하겠다.

한 예로 러시아 하원은 작년 2월부터 이미 외국에서 수입된 핵폐기물을 관리·감독할 특별위원회 설치법안을 승인, 핵폐기물을 수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상태이고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국제공동처리장' 논의까지 구체화되고 있다고 한다.

'방폐장'은 여전히 비슷한 모습일지 모르지만 주변의 모든 환경이나 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당장이 아닌 먼 미래를 내다보고 정부와 국민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 이번 기사를 마지막으로 총 8회에 걸쳐서 연재했던 '핵을 생각한다'를 마칩니다. 그 동안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연재기사는 끝났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우리 이웃, 아니 우리 지역의 '방폐장' 문제에 시민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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