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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탐방] 임휘칠 전 대우자동차판매건설 사장“부하직원들의 희망북돋움이 오늘의 대우자판건설을 이룬 원동력입니다”
성덕면 대목리에는 유독 사회 전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클 대(大)자에, 나무 목(木)자인 대목리 말 그 자체의 뜻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흔히들 말하는 풍수지리학적인 터의 기운이 있어서인지, 서울의 출향인중 대목리 출신들은 한결같이 거목이다.

그 인물 중에 임휘칠 전 대우자동차판매건설 사장이 있다. 임휘윤 전임 재경향우회장의 친형이기도 한 임휘칠 대우자판건설 사장은 대우그룹의 또 다른 신화이기도 했다.

이제 그의 신화를 잠시 들여다본다. 성덕초교(17회)와 김제 중앙중(9회), 이리공고를 거쳐 전북대 전기공학과 61학번으로 학창생활을 거친 임 회장은 지난 67년 신진자동차(이후 대우 자동차) 공채1기로 입사를 한다.

공채라 하지만 지방대 출신으로 한마디로 연줄 없는 그런 황무지에서의 출발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서울대, 연.고대, 한양대, 인하대, 등 당시의 쟁쟁한 경쟁 속에 동기들과 입사한 뒤, 입사환영회를 받지 못한 것은 저뿐이었죠. 하지만 이런 외로움이 저를 열심히 일하게 해준 어떤 원동력이 되어 후일의, 이사승진 시에는 저만 남아 있게 된 배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대우자동차구매부서에서만 17년의 근무를 한 뒤, 자동차판매 영업본부장으로 취임했고, 다시 총무담당이사를 거쳐, 96년 당시 한독시계 인수단장으로 취임한 후 시계부문을 경영하였으며, 99년도에는 대우자판건설의 사장직에 취임하게 되는 대우맨으로서의 이력을 쌓은 것이다.

당시 대우자판건설의 매출액은 건설회사로는 미미한 1천4백억원정도, 그나마 그룹내 내부수주가 90%인 그야말로 온실속의 화초격인 회사실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취임후의 공약으로 건설공사수주에 따른 직원들의 인센티브시행을 전격 결정했지만, 그룹내부 임원들의 거센 반발과 채권은행단의 견제도 만만치 않은 탓에 출발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임직원들의 희망과 꿈으로 연결되어 일개사원이 3천만원의 포상금을 받아갈 정도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는 대우가족의 비젼이 되면서, 타 계열사까지 부러워할 정도가 된 것이다.

결국 취임 3년뒤에는 매출 5천억원 규모에 그룹내부수주의 기대율을 5%이하로 낮추어 대우자판건설부문의 신화를 말 그대로 건설해 낸 것이다. 이는 집에서 기르던 가축을 야생마로 길들인 것으로 평가되며, 이를 계기로 2년 뒤에는 1조원대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는 밑거름을 형성할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꿈의 달성이 그 어렵다는 시기, IMF위기 때의 일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상당히 더 고무적으로 지금까지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부평 갈산지구에 5백세대, 부산 화명지구에 1천세대, 부천에 5백세대, 서울 쌍문동에 3백세대, 수원에 4백세대 등, 대우자판건설부문의 ‘이안’브랜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이후 우후죽순격으로 성장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피스텔 개발과 맞물려 이루어 놓은 성과가, 대우자판건설부문이 종합건설업체으로의 긍지를 인정받은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후 임휘칠 사장은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 부회장으로 물러나 1년 더 근무한 뒤, 지금은 (주)두리 라는 전문건설업을 경영하고 있다. 이 용퇴의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대우자판 건설임직원들이 그를 추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결단에 대한 인정을 가감없이 증명해주고 있다.

그는 부하 임직원들의 꿈을 존중해줬다는 점에서 그만의 기업을 일구었고, 임직원들의 그 꿈과 희망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깨끗한 용퇴로, 다시 기업의 성장보다 더한 경영자로서의 존경심도 함께 일군 것이다.

또한 그는, 성덕 대목리의 12형제중 7번째 아들로서, 그것도 생일이 7월7일인 이유로 임휘칠이란 이름을 얻은 만큼 그는 평생의 길에, 행운보다 더한 그만의 노력을 둠으로써 자신의 이름이 각인되는 걸 원했다. 사장취임식 당시 약속했던 “내가 있는 한 내부에서 나의 후임자를 정하겠다.”를 지키기 위해 은퇴를 2개월 전에 스스로 결정하는 등, 그룹측의 후임결정견제를 사전에 방지한 예를 들어보아도, 그룹 내의 ‘남자다운 경영자. 경영자 이전의 남자’ 그 약속의 실천으로 확실히 그를 각인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은 비록 연간 50억원 규모의 작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그는 욕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섣부른 욕심이 예전의 대우맨의 명성을 감할 수도 있고, 자칫 부하임직원의 꿈을 접게 할 수도 있는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차라리 떳떳한 정공법을 택하는 방법으로 그의 사업은 진행되고 있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대목리 남자, 임휘칠의 평생신화를 꾸준히 이어나가게 하는 정설(定說)의 화두로서,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삶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이제 대우맨 37년의 신화는 세인에게서 차츰 잊혀져 가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늘 남자로서, 또는 경영인으로서 떳떳했기에, 우리 고향사람들 만큼은 그 대우맨의 묻혀져가는 신화를 일부라도 기억해주길, 우리 모두는 바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향했던 가치는 언제나 인간을 향했기에, 오늘의 임휘칠, 그 이름석자는 결코 부끄럽지 않게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 기록될 것이다.

오병환 기자 obh@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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