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있어.

  비행가 이륙하자 해안선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움푹한 곡선이 아니고 직선이다. 섬나라의 비좁은 땅을 늘려보려고 어지간히 메우고 공들였구나.

 위에서 내려다보니 거의 대부분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경작이 가능한 면적은 고작 16% 정도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시커먼 산맥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아, 저 산!, 눈부신 자태를 한, 그 위엄이 주변을 압도하며 광채를 내고 있는, 바로 후지산이다. 가슴이 알아보고 와락 껴안는데 기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지금 왼쪽을 보시면 후지산을 보실 수 있습니다. 흐린 날씨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사진엽서를 한 장 사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던 후지산을 이렇게 만나다니, 과연 영산이라고 일컬을 만하구나. 일년내내 눈이 녹지 않는다니, 흰 왕관을 쓴 듯한 눈부신 자태가 힘이 넘치고 당당하구나. 정상 부근에서는 분화구가 느껴진다. 일본인들은 이산에 오르는 것을 숙명으로 여긴다는데 개방은 7-8월로 한정되어있단다. 화산이라서 미끄럽고 나무도 거의 없어 등반이 쉽지 않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행정 구조를 가졌고, 여러 시설과 기관을 방문해보니 우리도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을 만큼 궤도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흥청망청 쓰며 헌 것은 쉽게 버리고 새 것을 쫒아가지만, 일본의 저력은 기본기에 있다. 규제를 철저히 지키고 작은 것도 소중히 아껴 쓰며 알맹이가 충실하다. 일예로 화장지 사용만 봐도 그렇다. 국제공항에서도 일급 호텔에서도 재생화장지를 쓰고 있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꾸준히 해내는 점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보기엔 허름한 라면집 앞에 길게 줄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몇 대째 한가지만을 고수한 결과였다. 기성세대나 전통을 너무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작년에 200년 이상 된 기업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하나도 없는데 미국엔 14개, 일본은 삼천 개가 있다고 한다. 

  또한 현실적인 사고를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화장품 광고 모델은 보통사람보다 약간 더 예쁜 사람을 쓴다고 한다. 우리처럼 최고의 미인을 내세운다고 해서, 저 화장품을 바르면 저렇게 예뻐지리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까다롭게 일일이 따지고 계산하고 한 번에 한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는 모습이, 다중이인 우리 눈으로 볼 때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허황된 꿈을 꾸지 않고 자족하면서 내가 행복하면 된다는 사고가 맘에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일본을 얕잡아 보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면적도 우리 남한의 1.7배 정도 큰데, 자잘한 섬 몇 개니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성교육을 하면서 성폭력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놀랐다. 성폭력 범죄 건수가 우리보다 월등히 낮은 것이다. 뭐야, 일본이 성적으로 은근히 문란하고 이상야릇하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일본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 곳곳에서 만개한 매화와 부풀어 오른 벚꽃봉오리를 자주 만났다. 가지고 간 파카는 트렁크에 갇혀있었다. 

  봄의 시작처럼 새로운 각오를 다졌고, 봄의 희망처럼 계획들을 다시 점검하고 의욕을 일깨웠다. 보건진료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고 내 지역의 주민들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은 열의로 가슴이 설레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소장여? 우리 할망구가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다는디 어떻게 혀?"

  지금 몇 시 지?

▲ 후지산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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