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새삼, 그리고 고마워요. 

  내가 제주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섬이 차귀도예요.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섬인데 나는 제주에 갈 때마다 바다낚시를 가요. 주로 가을에 가서 루어낚시를 즐기지요. 다랑어를 잡는 맛이 정말 짜릿해요. 인조미끼를 달고 망망한 바다를 그저 달리고 있으면 다랑어는 배가 달리는 속도 때문에 물속에 있는 인조미끼가 진짜 고기인 줄 알고 덥석 물어버리지요. 

  보통 낚싯대하나에 인조미끼 아홉 개 정도를 달고 달리는데 몰려다니는 녀석들의 습성 때문에 한꺼번에 아홉 마리가 잡히기도 해요. 손에 실장갑을 끼고 있긴 하지만 그 쯤 되면 여자들은 당길 수가 없어요. 낚싯바늘이 손바닥을 파고 들 정도거든요. 잡아 올린 다랑어들이 갑판위에서 펄떡거리면 무섭기도 해요. 펄떡거림이 팽팽하게 전해오거든요. 

  차귀도를 좋아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어요. 화산석이 만들어 놓은 굴곡들이예요. 차귀도는 독수리 한 마리가 막 날아오르려는 모습이에요. 독수리의 몸통에 해당하는 부분이 삼층으로 되어 있어요. 나는 여기를 해상 낚시텔이라고 불러요. 일층에는 낚시도구를 두고 낚시를 하고, 이층에서는 매운탕이며 간식을 해결하고, 삼층에서는 자리를 깔고 잠을 자요. 책을 읽기도 하고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기도 해요. 함부로 독수리 이빨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하지요.  

  오늘도 차귀도에 낚시 왔어요. 올레길을 걷다가 잠깐 쉼표를 찍고 싶어서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낚시텔 있는 쪽에 접근하지 못하고 접안시설이 되어 있는 근처에 자리를 잡았어요. 주로 따돔이 잡혀 올라오고 어렝이라고 하는 놀래기나 코생이가 잡혀요. 복어도 가끔가다 잡히는데 쬐끄만 녀석이 뱃구레를 크게 키워서 빠각빠각 대드는 게 너무 귀여워 슬그머니 돌려보낸답니다. 놀래기 종류는 주로 뼈째 된장을 찍어 먹고 따돔은 회를 떠서 먹어요. 하잘 것 없는 수확이나 내가 먹을 만큼만 두고 나머지는 바다에 돌려보내요.

  자잘한 놀래기를 자꾸 낚아 올리는 후배가 낚싯대를 접네요. 그 후배도 낚시를 즐겨보고 싶은데 낚싯대만 드리웠다하면 놀래기들이 자꾸 올라오는 바람에 이젠 지겹대요. 물이 고인 자그마한 바위 웅덩이에 후배가 낚은 놀래기들이 엄청 많이 있어요. 무리를 지어 헤엄치고 있어요. 탈출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고 잡혀온 줄도 모르는 녀석도 있겠지요. 

  작은 웅덩이에 갇힌 놀래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성이 가져다 준 각시붕어들이 생각났어요. 김제에서 전주로 나와서 아파트를 처음 장만했을 때죠. 성이 김제 벽골제에서 각시붕어를 가져왔어요. 최고의 집들이 선물이었어요. 어항 가득 풀어놓고 여름 내내 그것들이 반짝거리는 걸 보며 지냈어요. 행복했지요. 무리지어 유영하는 그들이 방향을 바꿀 때만 잠깐씩, 아주 잠깐씩 어항 속이 반짝였어요. 그걸 몰입해서 보는 내겐 그것이 잠깐이지만 어항 속뿐만 아니라 온 집안이 다 환해졌어요. 아니 우주의 귀퉁이가 환하게 반짝였어요. 밖에 나가지도 않고 그 녀석들과 여름을 지냈지요. 

  가을 들어서며 날씨가 제법 쌀쌀해 질 무렵에 나는 반짝이는 우주의 귀퉁이를 잃어버렸어요. 어항을 청소하던 사람이 찬물 대신 따뜻한 물을 부어주었거든요. 나의 별들이 모두 죽어버려 빛을 잃은 채 수면위에 둥둥 떠올랐어요. 먹먹했어요. 사람이 차가운 물대신 따뜻한 물을 쓰는 때가 되니 당연히 각시붕어도 춥겠다고 생각했대요. 저런, 그 사람은 물고기가 한 겨울 얼음장 아래서도 산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나 봐요. 각시붕어를 묻어주고 우울하게 앉아있었어요. 상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겠지요. 찬물을 주어야 하는 각시붕어에게 따뜻한 물이라니요.

▲ 각시붕어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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