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들이 주는 가르침


2001년 4월 9일


옥수수, 상추, 쑥갓 심기


햇빛이 내리쬐던 날에 선생님은 우리들을 학교 텃밭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오늘은 우리 반에서 준비한 씨앗을 심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 조로 나누어서 이랑을 만들기 위해 밭을 갈고 골랐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땀이 많이 났다. 우리 조는 처음에 빨리 하다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해서 다른 조보다 늦게 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엄마 아빠께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 지 알 것 같다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땅을 잘 고른 뒤, 씨앗을 심었다. 우리는 옥수수를 심었다. 다른 조도 여러 가지를 심었다. 3번씩이나 왔다갔다하면서 물을 주고 나니 씨앗 심기가 끝났다.


교실에 들어와서 우리가 심은 식물들이 잘 자라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껴 참 좋았다.


이 일기의 주인공은 자신의 일기를 인용해도 좋다고 동의해 주었다.


나는 삭막해지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학급 활동으로 '텃밭 가꾸기'를 시작했다. 내 자신 스스로도 식물 가꾸기에 경험이 거의 없던 터라 서투른 솜씨로 아이들과 함께 상추, 쑥갓, 옥수수를 심게 되었다.


처음 텃밭을 가꾼다는 내 말에 아이들은 두 눈을 반짝이며 큰 기대감을 보였다. 사실, 난 시골에 사는 아이들은 채소를 심고 가꾸는 일에 능숙한 줄 알았는데, 대부분의 가정에서 채소 농사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전혀(?) 식물 가꾸기의 경험이 없었다.


호미, 꽃삽을 들고 신나게 종알거리며 일하던 것도 잠시, 땡볕이 내리쬐는 속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랑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힘드네요." ,"제 얼굴 탈까봐 걱정이예요." "더워요." 등등 하나둘 늘어나는 불평들...... 그러나 서로서로 격려해가며 우리는 가져온 씨앗을 모두 심었다. 교실로 돌아온 나와 아이들은 하늘에 기도했다. 우리들이 심은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올 가을에 풍성한 열매로 우리 곁에 돌아오길....... 그날 이후, 우리 반에는 아침마다 어린 새싹들에게 인사하는 습관이 생겼다. 심기만 하면 그냥 자라는 줄 알았던 아이들에게 날마다 물주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옥수수, 상추, 쑥갓을 보면서 아이들의 표정도 조금씩 밝아졌다.


몇 주 후, 빽빽하게 자란 옥수수를 옮겨심기를 해 주자며 또 한 번 땀을 흘렸다. 그러나 우리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옮겨 심었던 옥수수가 점점 시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애가 타는지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기 시작했고 그 중 몇몇 아이들은 옥수수에게 힘내라며 격려까지 해주었다. 기특한 녀석들...... 옥수수는 아이들의 정성으로 다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시작했던 '텃밭 가꾸기'는 오히려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씨앗을 심을 때의 열정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꾸는 마음은 교사가 마음을 닫고 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가르쳐 주었고, 잘 자라는 옥수수보다 시들어가는 옥수수에 정성을 쏟으며 소외된 아이들에게 훨씬 많은 손길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 가을이 되면 나와 아이들은 또 다른 무엇인가를 텃밭의 식물들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다.


"선생님, 물 주러 가요." 아이들이 아침부터 성화다.


올 가을은 유난히도 기다려진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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