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깨어보니 아무도 없다. 캄캄한 세상에 대고 엄마를 불러보다가 와락, 울음이 터졌다. 혼자 남겨진 무서움에 질린 어린 계집애. 엿보던 별도 눈물을 참아보려고 깜빡거리다가 그만 주르륵 땅으로 떨어졌다.

  얼마나 울었을까, 제풀에 겨워 잦아든 울음, 그 사이로 비집고 들려온 소리. '뻐꾹 뻐어꾹...' 엄마 품속처럼 아늑한, 정이 뚝뚝 묻어나는 소리에 계집아이는 우는 것도 잊어버렸지.

  발을 대롱거리며 마루 끝에 앉아서 혼자 집을 볼 때도, 이사가버린 친구가 보고 싶을 때도 함께 있어주던 뻐꾹아! 사람들이 너를 다른 새의 둥우리에 알을 낳는 얌체라고 놀려도 난 네가 하나도 밉지 않았어. 다른 새의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버린다는 말도 귓등으로 들었구나. 너하고 정이 들어 버렸으니까. 사람사이도 그렇지, 정은 못이기는 법이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은 언제나 텅 비어있었다. 엄마는 농사일에 허리 펴실 날 없으셨으니. 배가 고파 부엌에 들어가 보면 시렁 위에 감자튀김이 있었어. 아이는 허리에 맨 책보도 끄르지 않은 채 혼자서 감자튀김을 먹었지. 언제 만들어놓으셨는지 눅눅해져버린 감자튀김이 왜 그리 맛나던지. 그때도 네가 곁에 있어줬잖아. 천천히 먹어, 물도 먹으면서 먹어, 네가 그랬잖아. 급히 채 썬 감자를 뭉텅뭉텅 튀겨, 모양도 없던 그 감자튀김이 왜 이리 그립니?

  그 억척스럽던 엄마도 이제 많이 늙으셨구나. 세월이 흘러가서 내 사진엔 엄마 얼굴이 들어있어. 몸집도 작아져 뒷모습을 뵈면 마음이 아픈데, 아무리 좋은 음식도 도통 맛을 모르겠다고 그러시는구나. 이젠 내가 감자튀김을 해드리고 싶은데. 금방 튀겨서 바삭하고 고소하게.

  뻐꾹아! 감자꽃은 참 예쁘지. 조그만 하얀 꽃들이 은하수를 이루잖아. 별모양의 꽃잎 가운데에 노란별이 하나씩 들어 있는 거 알지?  그 애는 학교 가는 길에 있는 감자밭을 그냥 못 지나갔지. 바라보는 것으로 성이 안차서 밭고랑사이로 들어가 앉아있었어. 어디 꽃이 없어서 그까짓 하찮은 것이 예쁘냐고 하면 말할 거야, 내 꽃이라고.

  어른이 된 그 애네 집 텃밭도 감자꽃밭이란다. 사먹는 것이 훨씬 싸다고 어르신들이 가르쳐 주셨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말릴 수 없구나. 꽃은 모두 열매를 맺지. 꽃피우는 것이 다가 아니지. 호미로 두둑을 깊숙이 긁고 줄기를 잡아 다니면 주먹만 한 감자가 줄줄 따라 나오잖아. 그러려면 네가 필요해. 허황된 겉멋만 쫒지 말라고 네가 그 애를 헹궈주면 안될까.

  그런데 이제와 둘러보니 네가 없다. 어디로 갔니? 갑작스런 네 소리에 깜짝 놀라 손을, 숨을 멈추고 두리번거린다. 저런, 뻐꾸기시계에서 나는 소리일 뿐이구나.
 
  예전 북경에서는 고궁 담밖에 조롱을 들고 섰던 노인들이 있었더랬지. 궁 안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려주려고. 울지 않던 새도 제 새소리를 들으면 따라 운다는 게지. 하지만 한껏 목청을 다듬은 듯한 미끈한 소리가 정말 정떨어진다. 너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안다, 이런데서 살고 싶지 않은 게지. 매연과 소음이 끊이질 않는 답답하고 시끄러운 세상. 삶의 여유가 너와 함께 사라져 버렸구나. 이제야 네 존재 의미를 아프게 깨닫느니. 네 노래는 멍든 가슴을 불어주고, 급한 마음을 달래주었는데.

  네가 다시 오지 않으면 어쩌나.

▲ 사진 : 최진만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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