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시 경에 잠이 깼습니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가만히 있지만 잠이 달아나버린 것을 알아챕니다. 모든 것이 가라앉은 이 시간, 나뭇잎이 뒤척이는 소리, 새의 잠꼬대를 듣습니다. 안보이던 것들도 보입니다. 가슴속도 들여다봐 집니다.

  제 속에는 알록달록한 것보다 빛바랜 것들이 자꾸자꾸 많아져 가는군요. 깜깜한 허공에 대고 헛웃음을 흘립니다. 막막하게 밀려드는 허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한두 가지 화두를 가지고 살고 있었는데요. 생각을 잡아 두었다가 틈만 나면 가슴속에서 굴려보았던 글감들이 지금은 하찮아 보입니다.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고 그저 심드렁할 뿐이에요. 깨어있다는 것이 두려워서 이불을 푹 뒤집어씁니다.

  몸이 가라앉은 탓입니다. 폐렴은 노약자나 어린이가 걸리는 병으로 알았습니다. 기침이 오래 가기에 요즘 감기가 심해서 그러려니 했어요. 약을 먹으면 좀 괜찮아졌고요. 그런데 미열이 계속 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폐 사진을 찍어보았지요. 왜 이지경이 되도록 놔뒀어요? 의사도 지워지고 없는 한쪽 폐의 아랫부분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병가를 내어 쉬어야하지 않을까 했지만, 열이 많지 않으니 입원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저앉기 싫어서요. 가능하면 일상생활을 하며 이겨내리라 했지요. 항생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틈만 나면 쉬고 억지로라도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을 다독거렸습니다. 어서 일어나자.

  그 사이에 개망초꽃이 피었네요. 국화과이지만 들국화에도 끼어주지 않는 볼품없는 꽃, 이름조차 개자를 붙여주었잖아요. 개떡, 개살구처럼 변변치 못하거나 참이 아니라는 뜻으로요. 이 흔한 꽃을 저는 못마땅하게 여겼었지요. 이런 잡풀을 깨끗이 뽑아버리지 않고, 왜 구질구질하게 내버려둔담.

  그런데 지금은 달리 보여요. 흰 꽃들이 몸을 반듯이 세우고 한들거리는 모습은 생명을 노래하는 듯합니다. 벌과 나비도 방문하지 않고 아무도 대접해주지 않지만, 빈터만 있으면 혼자 자가 수정을 해서 널리 퍼지는 꽃이지요.

  묵은 밭도 개망초 꽃밭이 되었어요. 할머니는 힘이 부쳐서 더 이상 밭을 일굴 수 없게 되었지요. 땅을 묵히는 것이 하늘에 죄스럽다고 하는 할머니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을까요. 할머니의 무명옷처럼 단정하고 수수한 개망초꽃이 밭에 가득합니다. 한 송이 들여다보니 칠팔십 장 되는 꽃잎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낱낱이 헤아려보니 뜨거운 감격이 차오릅니다. 저 작은 꽃도 자신을 마음껏 빛내면서 당당히 꽃피우는군요.

  쭉 뻗은 자태가 마치 앙오 자세를 한 발레리나 같습니다. 발레리나가 제자리에서 수십 바퀴를 도는 고난도 기술을 '휘떼'라고 한답니다.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팅장면에서도 볼 수 있지요. 일반인들은 서너 바퀴만 돌아도 정신을 못 차리는데, 어떻게 무용수는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시선집중에 그 비밀이 있답니다. 즉, 한 곳을 정한 후 집중하여 그곳만 응시하면 되는 것입니다.

  무용수가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 휘떼로 중심을 잡듯이 우리 인생도 선명한 목표를 잡고 있으면 어떤 난관도 능히 이길 수 있겠지요. 가슴속의 꿈을 놓지 않는다면 시기가 문제일 수는 있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문태준 시인은 개망초꽃을 '공중에 뜬 꽃별, 무슨 섬광이 이토록 작고 맑고 슬픈가' 하고 노래하네요.

  몸을 다잡고 마음의 허리를 동입니다.

▲ 사진: 최진만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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