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도라지꽃이 가득 들어찬 저 산등성이를.
 
  그 청순한 모습에 그만 반해버릴걸요. 단정한 홑꽃이 어쩜 그리도 우아한지요. 흰색과 보라색 꽃이 섞여 신비스런 조화를 이루었어요.

  저렇게 흰 저고리에 보라색치마를 입은 적이 있었지요. 어머니는 저에게 개량한복을 해 입히셨지요. 대학을 졸업하던 해였는데요, 온갖 자유스런 복장이 넘쳐나는 도심에서 오히려 눈에 띄는 차림이 되었어요.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말해 주었지요. 우리 것에 대한 향수인 게죠. 새로운 문명에 묻혀 버렸지만 뿌리에 대한 애착은 끊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 도라지꽃밭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여름이었어요. 늘 지나다니는 큰길에서 보니, 멀리 산중턱에 보랏빛이 어려 있는 거예요. 도라지꽃이구나. 금방 알아챘지요, 좋아하고 있었으니까요. 몇 차례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아봤지만 잘못 들어 되돌아 나왔을 뿐 가까이 갈수 없었어요. 나중에야 반대편에 길이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올라가서 저를 만났을 때는 꽃은 이미 져버리고 삭과를 맺었더군요. 그래서 일 년을 기다렸어요. 그 옆을 지나칠 때마다 저기 도라지 꽃밭이 있지, 하면서요. 산지의 도라지는 몇 년 후에 수확을 한다니 꼭 만날 수 있겠거니.

  그리고 이렇게 다시 여름이 왔지요. 산비탈의 복숭아밭을 지나서 구릉을 넘어서니 도라지 꽃동산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목을 늘이고요. 그 아찔한 만남에 가슴이 뻐근하데요. 너무 어여뻐서 ‘인생은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주고 싶어요, 하고 말하며 꽃들은 죽는다.’ 이렇게 노래한 프랑스의 시인 프레베르의 시구가 생각났어요.

  꽃밭에 앉아서 하염없이 도라지꽃을 바라봅니다. 세상살이, 어디 아름답기만 한가요. 빠듯하고 숨 가쁘게 돌아가면서도 마음은 허허롭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지만 인연의 두께 또한 얇아지는 듯해서요. 사람들은 안면만 트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 진심을 알려고 하지 않고 속내를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겉도는 사이로 지냅니다. 마음이 빠져버린 관계의 허전함을 왠지 도라지꽃과 이야기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찾아갔습니다. 잠자리 떼도 와서 함께 노닙니다. 벌써 씨를 맺고 있는 것, 활짝 피어난 것, 막 봉오리를 맺은 것, 각양각색입니다. 처음 꽃망울은 꽃받침과 같은 연녹색입니다. 오각형 꽈리처럼 생겼지요. 꽃잎끼리 풍선처럼 빈틈없이 붙어있어서 마치 비밀스런 보물이 그 속에 감추어 진듯해요. 점점 커지면서 색이 앉습니다. 언제 보랏빛, 흰빛이 와서 물을 들이는 것일까요.

  이곳에서 하룻밤 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늘의 별이 땅에 떨어져 도라지꽃이 되었다는 전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꽃봉오리가 열리는 순간도 아무도 보지 않는 은밀한 밤에 일어나지 않을까요. 펑, 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까요. 속내를 서로 나누고 싶어요. 한줄기 꺾어와 곁에 두고 지켜보았습니다. 다섯 귀가 먼저 열리고 한 장씩 꽃잎이 펼쳐지더군요. 속에 든 보송보송한 꽃술에게 눈인사를 건넵니다. 곧 별모양이 될 거에요.

  산중 꽃밭으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친구들을 불렀지요. 놀러온 큰아이의 친구들을 배웅하는 길에도 핸들을 돌려 산비탈로 올라갔습니다. 봉사활동 온 학생에게도 보여 줬어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 친구는 도라지꽃을 모르네요.

  저 꽃이 지기 전에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요.

▲ 도라지꽃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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