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농사, 이대로 좋은가


예전 이맘때가 되면 우리 내 농민들은 들녘에 노랗게 물든 자식새끼 같은 벼이삭을 보며 마냥 흐뭇해하곤 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오히려 쌀 수확기가 임박할수록 넉넉한 기쁨보다는 "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농민들은 시름에 잠기게 된다.


즐거운 명절, 추석을 앞두고 김제농민회 회원들이 김제에 있는 4개 미곡종합처리장(RPC)에 농성을 들어가고 각 단위 농협에는 때아닌 농성천막이 만들어져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귀성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라는 시민의 볼멘 소리도 있지만 "오죽하면 추석명절에 농성을 하겠느냐?"는 안타까움도 있다.


쌀은 농가소득의 25%, 농업소득의 50%를 차지하는 농민경제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런데 모든 농산물의 수입이 개방된 상황에서 최근 쌀 재고량이 증가하여 창고가 모자라고 쌀값 하락이 지속되는 등 지금 우리 농민들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오죽 하면 충남 아산과 논산에서 자식새끼 같은 벼를 갈아엎었을까?


지난 24일, 정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쌀값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농림부와 민주당. 민국당은 24일 당정협의를 열어 정부 매입양을 200만섬 늘리는 것과 당분간 정부 보유벼를 공매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정부가 575만섬을 수매하고 농협과 미곡처리장(RPC)을 통해 각각 200만섬과 550만섬을 매입하여 총 1325만석을 수매하려 하던 것을 2백만섬이 더 많은 총 1천525만섬으로 결정하고 늘어난 200만석은 전량 농협을 통해 산지쌀값으로 매입한다.


농림부는 11월15일까지 올해산 산물(말리지 않은 상태)벼를 수매해 전체추곡수매량 575만석의 약43%인 250만석을 산물형태로 수매한다고 밝혔다. 산물벼 수매란 농가가 논에서 수확한 벼를 곧바로 인근 미곡종합처리장(RPC)으로 운반, RPC가 벼의 중량과 수분 등을 자동화계기로 측정해 수매대금을 현장에서 지급하는 제도로 지난 95년부터 도입됐다.


올해 정부 수매가는 지난해보다 4% 인상돼 40㎏ 조곡(벼)기준으로 1등급이 6만440원이다.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 매입량을 늘린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농협과 미곡처리장(RPC)을 통해 수탁 판매하는 것은 언뜻 보면 쌀값 보장을 위한 정부의 노력처럼 보이지만 이 정책은 결과적으로 첫째로 쌀값 하락을 부추겨 당장의 농민의 생산비 보장을 외면하게되고, 둘째로 쌀에 대한 가격보장 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기 위한 시나리오이고, 세째로 이 정책은 식량안보 측면에서 외세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농업포기 정책으로 결과할 것이다.


왜 수탁판매 제도와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이 문제인가? 위탁수매가 왜 쌀값 하락을 부추기는가?


농협과 미곡처리장을 통해 산지 쌀값으로 매입했다가 이듬해 쌀값 동향을 보고 정산하는 방식의 수탁 판매제는 산지쌀값 하락을 야기시킨다. 왜냐하면 농협의 매입가가 수매가 1등급 6만440원보다 낮고 2등급 5만7760원 보다도 낮은 수준이어서 당장의 쌀값폭락을 증폭시킬 것이다. 당장의 쌀값 결정을 미루고 이후 시장동향을 보고 쌀값을 정산하겠다는 것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쌀값을 적용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재 산지 쌀값이 폭락하고 있는 실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쌀값을 어떻게 생산비 보장 수준으로 끌어올리는가 이며, 이는 초기 쌀값을 결정하는 RPC자체 매입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이미 수확기 산지쌀값 하락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김제농민회에서는 국내 쌀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농협에 대해 최소한의 쌀 생산비라도 보장해주기 위해 농협이 수매 2등급 가격인 158,840원으로 자체 매입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농협은 농민을 위한 농민의 조직이 아니던가?


둘째로, 위탁수매는 정부가 쌀값보장과 생산비 보장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추곡수매를 축소하고 위탁수매를 확대하고 직접보상제를 통하여 휴경농지, 윤작제 도입에 대한 보상이나 쌀값 직접보상으로 생산비 지원을 하겠다는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쌀이 정부의 50% 보조금에 겨우 유지되고 있는 상황인걸 보면 현실성이 없다. 더구나 내년도 농림예산 심의에서는 논 농업 직불제 예산이 200억원이나 삭감되고 밭 직불제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을 보면 정부의 주장은 개도 웃을 일이 아닌가?


셋째로, 정부의 개방정책은 식량안보의 위협이 되고 외세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는 2004년 WTO 재협상에 대비하여 2003년부터 추곡수매가를 동결하거나 낮추고 직접 보상제를 통한 농민들의 소득보전, 쌀 증산정책 포기, 정부 수매제도 철폐라는 쌀 산업 중장기 대책을 가지고 있다. 최종 목표는 국제 수준으로 쌀값을 낮추어 미국과 중국쌀에 대항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게 하자는 것인데 이는 한마디로 볏짚 들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다.


현재 '개방농정'의 결과로 농업과 농민들이 파산상태에 빠져 농가부채가 92년 568만3천원에서 98년말 1701만1천원, 99년말 1753만5천원으로 늘어났고 2000년 7월 현재 농가부채 총액은 무려 39조7565억원이나 된다. 농촌에는 살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이 하나둘씩 떠나 빈집이 수두룩하고 농촌인구도 약400만으로 줄었다. 한국경제가 왜 이 지경이 되었고, 우리 민중이 왜 외국자본의 노예로 전락하였는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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