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곳은 일주문 밖의 나들이이거나 잠시의 세상 속 안주 같았다.

나리꽃 채 피우지 못했던 한 여름 폭우 끝의 기억은, 불과 2년 전의 피안 속이 그렇듯, 금산사는 여전히 내 삶을 끌어당긴다.

살아서 바쁜 우리네는, 차 한잔을 놓고서도 잠시의 생을 뉘이지 못하고, 앞만 보고 걸어온 덕에 '모악의 엄뫼'를 잊었던 게지만, 다시 돌아 나선 지천의 개울은 영겁처럼 흘러서 '오늘'이란 하루를 지금도 방생하고 있었다.

'산사 가는 길'이란 어쩌면 세상을 덜어내고자 함일 것이다. 그 '덜어버림'의 망각 속에 채 도달치 못한 과정 위의 산사 길이라면, 내 구도의 여정은 오늘도 '깨달음의 차 한잔'을 얻으려 익숙한 풍경 앞에 서야 하겠다. 그 곳이 금산사이다.

그렇게 금산사 가는 초입엔 찻집 '산사 가는 길'이 있었다. 금산사 일주문 너머 <산중다원>에서 속세를 조망하던 서른 후반지기 송순녀씨가 좀더 세상 곁으로 온 셈이라 쳐도 되고, 아님 그 스스로가 '산중'을 파계하고 내려앉은 여느 대처승처럼, 차마 버리지 못한 '산사에 대한 애증'같이, 그곳엔 그녀만의 찻집 '산사 가는 길'이 하나의 망부석 같았다.

여전히 송씨네의 다원불패차는 진국의 위용을 다했고, 다소곳이 내온 오미자차에는 "묻노니 자네는 왜 이리 고운가"를 담아내어 소담스런 조명 밑, 살결 거친 종이동자승의 합장과 대조를 이룬다.

격자창 너머로 포플러잎이 흔들렸다. 오밀조밀 살들을 부대끼며 군락을 이룬 산사입구 상가단지에서 '산사 가는 길'은 특별히 소박하다. 마치 형이상학에서 한 걸음 발을 뺀 형이중학의 편한 중용처럼 터진 청바지면 어떠랴. 그래서 흔들리는 의자는 가부좌에서 일탈한 한때의 더욱 안락함인 것을.

이층 다락 낮은 지붕에 서 보았다. 듬성듬성 몇 몇의 앉은뱅이 탁자가 보이고 아직 채우지 못한 원고더미가 한쪽에 쌓여있다.

잠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위를 보았다. 일부러 하늘을 다 가리지 않은 천장 한 켠에 낮 달이 걸쳐 있어, 매서운 겨울엔 '히드클리프'라도 대신 나타나 천장유리를 두드릴 것 같았다.

결국 두터운 방석을 깔고 다시 '기다림'의 운을 떼기에는 '올 때는 다 버리고 오라'라는 해탈을 내 자신이 아직 지니지 못해, 대신 송수권 시인의 시 한 구절로 '공수래 공수거'의 무소유를 대신해야만 했다.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찻집 '산사 가는 길' ☎548-8876>

오병환 기자 obh@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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