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깨우는(?) 작은 불협화음

자명종이 울리기 무섭게 새벽같이 기상해 시민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날도 날일뿐더러 새벽공기를 맞으며 달리는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지 새삼 몸에 힘이 불끈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시민운동장 맞은편 주차장에 먼저 도착한 10여대의 버스가 줄맞춰 주차되어있는 가운데 버스기사들의 불평 섞인 음성과 반박 반 설득 반으로 대응하는 농민연대 간부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몇몇 기사 중에는 "미리 각자 마을을 정해줬으면 그곳으로 직접 갈텐데 구태여 이곳에서 모여 다시 흩어지자고 해서 시간적·금전적으로 두 번 일을 하게 되었다"며 심한 불평을 터트린 끝에 그대로 버스를 몰아 돌아가 버리는 이도 있었다.

다행히 후속버스들이 속속 도착하고 늦장 대책이었지만 이후의 일 처리가 신속하게 이뤄져 각 읍·면·동 거주 농민들은 크게 늦지 않고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탑승자들이 미리 정해지지 않았던 듯 부랴부랴 사람들을 부르러 다니는 모습들이었고 한 대의 버스로 충분할 것을 두 대가 움직이는 광경도 속속 연출되었다.

기자는 필기도구와 카메라가 든 검정색 가방을 들쳐 메고 '광활면' 1호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의도로 가는 길

"요새 먹고살기 편한가보네"
"그러게…우리도 오죽하면 하루일손 포기하고 서울까지 올라가겄능가?"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을 아쉬워하는 농민들의 말속에서 농민대회에 임하는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것 같았다.

'광활면' 차량이 서 김제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있는 시간에 차량 안에서는 농민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부터 인원체크 및 도착 시 주의사항 등, 세심한 여러 가지 배려가 인상깊었다.

11시30분, 화성휴게소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 '월촌동' 농민들 속에 끼어 같이 식사를 했다.

얼마 전 실린 '열린우리당' 광고가 인상깊었나보다.
김제시민의신문과 '열린우리당'을 연계해 말하는 일부 농민들이 있었다.

지면을 빌어 기자는 확실하게 말한다.

광고는 광고일 뿐, 김제시민의신문은 어디까지나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지역전체의 소식을 전달할 것이라고.

신문은 어디까지나 기사로 말하고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농촌은 생기 없는 거대한 양로원'

"아이고…치어죽겄구만"

한 농민의 혼잣말처럼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 둔치에 모였다.

경북상주, 충남당진, 인천, 전남고흥 그리고 제주도까지, 각지에서 올라온 농민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대회에 임하는 모습들이었다.

전북에서는 우리지역 포함 총 1만3천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본 대회에 앞서 진행된 식전행사에서 민중가요가 울려 퍼졌지만 농민들의 구호제창 소리는 대형스피커에서 나오는 음량마저도 덮어버릴 정도로 우렁차고 컸다.

노래패 '우리나라'의 힘있는 노랫가락, 고 이경해열사의 큰딸 보람씨의 애절한 '사부가'가 이어질수록 전체적인 분위기는 점점 힘과 엄숙함을 더해 가는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올라오는 길에 마셨는지 얼큰하게 술에 취한 취객들이 가끔 행사장에 진입해 안전요원들과 가벼운 마찰이 있었고 연신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다는 방송멘트가 사회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본 대회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더욱 과열되기 시작했다.
송남수 상임대표의 대회사에 서정의 한농연회장과 정현찬 전농의장의 정치연설 그리고 윤금순 전여농회장과 김인호 한여농회장의 결의문 낭독.
여러 가지 말들과 의견들이 오고갔지만 유독 가슴을 크게 울리는 한마디가 있었다.

농촌은 생기 없는 거대한 양로원이다.
오늘날 우리 농촌의 슬픈 현실을 가장 함축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빠지지 않는 화제 '핵폐기장'

"19일 오늘 현재 118일째 촛불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즘 각 노동단체 및 여러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슈가 바로 '핵폐기장'문제이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성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부안에는 현재 대책위원장이 따로 없습니다. 직책상 형식적인 대책위원장은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부안 군민 7만명 모두가 대책위원장입니다. 현재 주민의 90%가 '핵폐기장'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강제로 밀어 부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의견을 이렇듯 깡그리 무시하는게 참여정부이고 민주국가입니까?"

가슴을 절절히 진동시키는 울림에 모든 농민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현재 '핵폐기장'과 관련해서 300여명이 연행되고 17명이 구속되고 71명이 사법처리되었고 600여명 이상이 시위도중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지극히 슬프고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가두행진 그리고 돌아가는 길

오후 5시 40분 경 본 행사를 모두 마친 농민들은 이날 결의한 내용을 가지고 여의도 문화공원까지 가두행렬을 시작했다.

서울 시민들의 퇴근시간과 맞물리는지라 가뜩이나 막히는 교통이 더욱 정체되어 불평 어린 목소리들도 간간이 들려왔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널린 쓰레기들.

하지만 10만 여명의 농민들은 최대한 질서를 지키며 여의도에 남겨질 여러 가지 피해의 흔적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대회를 마친 농민들은 인원점검 등 돌아갈 준비로 무척 분주했고 기자는 오래간만의 기차여행도 즐길 겸 지하철을 타고 조용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출발시간까지 30여분 정도가 남아 역 바로 앞에 위치한 헌혈센터로 들어갔다.

"도대체 왜들 서울에서 그러는 것일까? 꼭 무슨 일만 있으면 서울에서 집회를 한단 말이야"

중년으로 보이는 담당간호사의 불평 가득한 음성.
모임으로 인한 교통난 등 많은 불편으로 인한 불만이겠지만 헌혈이라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간호사분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라 조금은 씁쓸했다.

해마다 계속되고있는 전국농민대회.
작년에는 선거를 의식한 탓인지 대통령후보들이 관심을 보이며 참석했으나 올해는 그런 것도 없어서인지 농민들과 관련단체에 연관된 사람들 외에는 특별히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새까맣게 그을린 어린아이부터 팔순의 노파까지 짓눌린 삶의 무게를 뱉어내고픈 열망 가득한 함성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고 있거늘 현실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너무나도 보이지 않는다.

헌혈센터 간호사의 신경질적인 말처럼 농민대회는 여전히 그들만의 공허한 메아리는 아닐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400만 농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될 날은 언제쯤일까?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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