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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효', 효녀가수 현숙 통해 성숙되길
  • 이병준 시민/객원기자
  • 승인 2009.09.30 20:51
  • 댓글 1

   
▲ 화려한 연예인이지만 해밝은 표정과 평소에 실천하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갖고 있었다.
월촌 장화 출신 현숙씨(50·본명 정현숙)는 중풍과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7년간 극진히 보살피고 의식이 분명치 않은 어머니를 14년간 모셨다.

 그의 효행은 부모에서 머무르지 않고 주변의 불우한 이웃은 물론 힘겹게 생활하는 많은 어르신들에게 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국민이 사랑하는 국민 가수로서 많은 인기곡을 발표했으며, 효성이 지극한 가수로 1996년 국민포장(효행 연예인), 2001년 효령대상 효행부문상, 2004년 대구서암장학재단 효행대상, 2007년 전북예향대상·김제시민의장 효열장, 2009년 삼성효행상 특별상 수상 뿐 아니라, 한양대병원 8700만원 기탁, 김제사랑장학금 1천만원, 이동목욕차 6대 기증 등 많은 수상과 기부를 해왔다.

효녀가수 현숙 '효사랑비' 건립 배경
 
 

   
▲ 2009년 2월 제33회 삼성 효사랑 시상식에서 특별상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는 현숙. 상금 1500만원도 기증했다.
'효녀 가수 현숙'은 그다지 넉넉한 집안 살림이 아니었기에 어려서부터 고생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시골의 인심은 그대로 몸에 배어 지금도 움켜쥐기 보다는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현숙씨는 인기가수라기보다는 효녀가수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연예인이어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효를 실천하고 행한 모범적 실례로 우리는 그를 보고 있다.

  먼 옛날에도 정절을 지킨 사람에게는 '정절비'를, 효를 행한 사람에게는 '효열비'를 세워 주었다. 이번 '현숙 효사랑비'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효의 실천은 누구나 알고 있는 덕목이지만 그것을 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현숙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양 부모의 병수발을 해냈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전국의 수많은 노인들을 위해 선행을 행하며 부모에게 다하지 못한 효의 아쉬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숙씨의 효행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교훈으로 삼아 진실된 공경의 정신을 일깨우는 발판으로 삼고자 추진되고 있다.

효사랑비 추진 상황

   
▲ 효사랑비는 가수 개인의 노래비가 아닌 노인을 공경하는 모습으로 두명의 노인앞에서 현숙씨가 노래를 부르는 형상으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지난 3월 효사랑비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발족(위원장 김영곤·김제예총 회장)하고 시는 조형물 설치부지와 기초 작업 비용 3천만을 지원키로 했다.

 부지는 당초 벽골제 권역이 거론됐으나, 아리랑문학관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조형물 설치를 위해 기초가 되는 바닦은 돌로 구성하고, 두명의 노인앞에서 현숙씨가 노래를 부르는 형상의 청동 조형물로 제작, 가수 개인의 노래비가 아닌 노인을 공경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현숙씨의 지속된 효사랑

  소아암 백혈병 어린이 돕기 무료봉사 및 공연을 비롯해 대구 서암장학재단 주최로 열린 효행상 시상식에서 효행대상을 받은 현숙씨는 이날 함께 효부상을 수상한 대구고 2년생 정철중군(아버지께 간이식한 고교생)에게 자신의 상금 500만을 그 자리에서 쾌척했고, 2004년부터 이동목욕차를 가장 먼저 고향인 김제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효를 실천하는 사랑의 실천을 전개하고 있다.

 울릉도. 경남 하동, 충남 청양, 강원도 정선지역 등 불우 노인들을 위해 각각 4,700만원 상당의 이동 목욕차를 꾸준히 기증했고, 최근에는 경북 칠곡에 6번째 목욕차를 기증했다.

 현숙은 "몸이 불편한 노인들과 장애우들의 재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이동목욕차량을 지원하고 있으며 힘이 닿는 한 기증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

만남에서 살아온 역정 알 수 있어

   
▲ 효녀가수 현숙씨는 오랜세월동안 국민가수로 사랑을 받고 있다.
  나눔이란 가수는 노래로서, 작가들은 글로서, 헤어디자이너는 멋진 머리로, 주부는 음식으로 나누며 살아간다.

 '효사랑비' 건립소식이 전해지면서 기꺼이 1천만원 기부하는 기부자들로 부터 곡식이나 꽃을 팔아 참여하는 소액(1만원~2만원)기부자, 현숙씨와 27년간 동고동락한 현숙씨의 운전기사 가족들이 모은 40만원, 소아암 백혈병 부모님들의 기부금을 버면서 현숙씨는 마음이 찡하다고 한다.

  현숙씨의 어머니는 생전에 딸이 준 용돈을 쓰지 않고 장롱에 차곡차곡 모아 놓았다고 한다. 이 돈으로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소천하셨고, 공교롭게도 딸의 생일인 7월 1일 발인했다. 현숙씨는 "어머니께서 모든 것을 보살펴 주시고 생일의 맞이한 딸에게 따뜻한 마지막 선물을 주시며  떠난 것 같다"고 회고한다.

 현숙씨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 산에 비 내리던 날 어머니는 구름 따라 가셨습니다. 고향집 마당에 옛날은 남았어도 가신 임 볼 수가 없어 사진에 얼굴을 묻고 어머니 어머니 불러봅니다"라는 노랫말에 담아 49제를 마치고 부모님 묘 앞에서 평소 어머니가 좋아했다는 '희망가'와 '그리운 어머니' 노래를 한 소절씩 불러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고 한다.

  아버지(작고 정광진 옹)는 장화마을이장으로 동네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성격이다 보니 항상 가족들은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 역시 김치 한독만 담궈도 동네사람들과 나눠먹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가 나눔의 실천을 키워내지 않았나 싶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남을 위해 봉사하다 보니 배고품을 주셨지만,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주셨으며 감사와 나눔의 좋은 성격에 주신 나의 부모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고 한다.

노래를 하게 된 동기

  부모님께서 가족보다는 어려운 사람과 주변사람들을 돌보다 보니 현숙씨의 가정은 끼니를 때우기 어려운 형편으로 어머니가 외갓집에서 쌀을 가져와 끼니를 때우며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랐다. 학창시절에 부모님께 세계여행을 시켜드리겠다며, 모든 가족들이 반대하는 것을 무릅쓰고 어머니가 쌀 한말과 만원, 그리고 김치를 주어 완행열차를 타고 친구 언니집에 상경 청계천에서 뚝섬까지 매일 걸어 다녔다고 한다(왕복 4-5시간 소요). 오아시스레코드사에 다니면서 주산1급 실력으로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꿈을 키웠다고 한다.

항상 김제의 딸이라는 자부심

  "어린나이에 가수의 꿈을 갖고 상경, 꼭 성공해서 고향사람들 찾아봐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생활했다. 좌절하지 않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으며 지금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좋은 노래를 남겨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면서 "내 고향은 김제라고, 누렇게 물든 평야를 보며 너그러운 마음과 행복을 전해주는 김제사람들은 통이 크며, 윗사람들을 공경하고 효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도 알리고 싶다"고 한다. 이어 "김제발전에 미력하나며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한다.

현숙씨 인터뷰를 마치고
 
  현숙씨는 얼핏 화려한 연예인이고 전국적인 인물이지만, 타인에게 전혀 거부감을 주지 않는 해밝은 표정과 평소에 실천하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갖고 있었다.
  겸손하면서도 낮은 자세로 모든이에게 사랑과 나눔과 효심을 전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김제를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인프라로 자리메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 운전기사 가족과 27년간의 동고동락, 메니저와 데뷔 때부터 함께한 인연 등 그간의 선행외에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의를 지키는 현숙씨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강릉이 신사임당을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부각시켰다면, 우리 김제는 효녀가수 현숙의 효행을 기반으로 효심이 강한 도시로 연상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병준 시민/객원기자  goodgum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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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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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경향우 2009-10-05 19:28:24

    글쎄요
    옛말에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했는데
    데놓고 동상세우자니 뭔가 좀 아쉬운듯 하네요
    좀더 신중하시길 빕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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