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잘 간직한 '금산교회'의 실제 이야기를 동화 형식으로 엮은 '팟정이의 봄'이 (사)모악문예에 의해 출간됐다.
  이 책은 첫번째 이야기로 금산교회의 아름다운 미덕으로 알려진 이자익목사와 조덕삼장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자익은 조덕삼의 종이었으나, 조덕삼이 이자익을 후원해 목사가 되는 것을 도왔고, 그 후에 목사로 섬겼다는 이야기를 모태로 재미있게 '팟정이의 봄'을 구성했다. 7차례에 걸쳐 '팟정이의 봄'을 연재한다.

소원

  빈 그릇을 들고 집에 가는 길은 어깨도 가볍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얘, 우리 예배당에 들렸다 갈래?"
  "어찌 그려 마님이 지다리고 계실 것인디."
  "잠깐만 들렸다 가자. 종탑 놀이 한번 한다고 그리 늦지는 않을 거야." 소연은 자석의 손목을 잡고 예배당으로 뛰었다.
  자석은 소연에게 끌리듯 질질 끌려가면서 싫지가 않았다. 보드라운 소연의 손이 흙 묻고 거칠어진 자기의 손목을 아무렇지 않게 잡고 뛰어가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석은 소연을 따라 가면서 소연에게 잡혀있는 손목에만 눈길이 갔다.
  예배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목사님도 바쁜 농사철 누구네 일손을 돕겠다고 나가신게다.

  소연은 종탑 밑으로 가서는 줄을 잡고 쪼그려 앉았다. 종이 울릴까 줄을 팽팽히 잡고 앉은 소연의 모습이 노랑 치마를 입고 달을 기다리는 달맞이꽃 같았다. 한낮의 달맞이꽃이라니 뽀얀 소연의 얼굴이 달과 같으니 낮에 뜨는 달맞이꽃이 소연인가 보다.
  소연은 신이나 자석에게 손짓을 하는데 자석은 구미호의 구슬에 홀린 총각이 되어 소연에게 빨려 들었다.
  '저것이 여우가 틀림 없구만. 저 입에서 나오는 말 좀 보게. 나를 홀리는 것이여. 언젠가는 나를 죽일 것이구만. 안 되야 어서 도망가야지' 자석은 소연이 구미호가 틀림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린 날 어미가 들려준 구미호이야기에서 구미호는 구슬로 총각의 기운을 뻣어간다고 했다.
  자석은 집으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란디 예수 믿는 구미호도 있단가. 소연이는 여우는 아니 것이지. 그려 여우가 아니고 천사여. 하나님이 내려준 우리 마을 천사랑게.' 소연이 천사라는 생각이 들자 자석은 소연이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도 천사였기 때문이라고 믿게 되었다.
  자석과 소연은 예배당 종탑 밑에서 종을 가지고 아슬아슬 스릴을 즐기며 웃고 놀았다.

  "어찌 인자 오냐?" 자석 어멈은 소연과 함께 간 자석이 실수나 하지 않았나 걱정에 대문간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줌 걱정했어. 내가 걸음이 느려서 그래. 아줌 다리도 아픈데 들어가 쉬어야지. 얘 엄마 모시고 너도 들어가" 집안으로 들어선 소연은 자석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팽 돌리고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가시나가 별나다. 아까만치는 그리 웃고 잘 떠들드만. 가시나는 가시나구만.'

  아버지 따라 논밭을 헤집다 보니 시간은 잘도 갔다.
  부은 다리로 오래 걸어 다닐 수 없는 자석 어멈은 바쁜 이런 날 죄인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자석과 소연만은 자기들 놀이에 맘이 들떠 하루 종일 방방 거리고 다녔다.
  "자석아 오늘도 소연이랑 수고 좀 해야겠구나."
  "예, 마님 걱정 마시랑게요. 지 혼자 혀도 되는디..." 자석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 뱉고 행여 마님이 혼자 하라고 할까 가슴이 졸였다.
  "아니다 농사철에는 부지깽이 손이라도 빌린다 안허디."
  "어머니 다녀올게요." 소연은 국수 소반을 들고 먼저 대문을 나섰다.
  "친구들이 학교 간 후 넌 뭘 하며 지내니?"
  "마당도 쓸고 아부지 도와 밭에도 나가고 나무하러 산에 가는 구만."
  "산에 가믄 내 방이 있어."
  "산에 무슨 방이 있어?"
  "그런게 고것이 언덕받이에 소나무 큰 것이 있는디 그 밑으로 풀밭이 좋구만 거그 누워 하늘도 보고 마을을 내려다 보믄 세상이 다 내 것 같구만."
  "우리 오늘은 산에 갈래? 나도 네 방을 보고 싶어. 하늘도 보고 싶고 세상도 보고싶어." 소연은 신세계의 새로움에 도전하는 용사가 되어있었다.

  "아재들 새참 드세요."
  "오메, 참말로 우리 아씨가 또 오셨네.
  "아재들 새참 빨리 드시면 좋겠어요. 제가 할 일이 좀 있거든요."
  "아 예~~ 누구 분부라고 거역 하겠스라. 안그려도 배가 솔찬히 고팠구만요." 아재들은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소연은 빈 그릇을 서둘러 챙겨 보자기를 묶었다. "산에 가려면 서둘러야지."
  "산이 뭣이 좋다고 그럴까. 나는 핵교를 가고 잡구만."
  "학교도 재미있는데 난 너의 세상이 더 궁금해."
  자석은 소연과 나란히 걸어 산에 가는 모습을 칠성이 놈이 본다면 부러워 병이 날 것인디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천천히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 바쁜 시절에 대낮에 산에 오르는 놈은 없었다.

  "여기그만. 어뗘 세상이 다 보이지."
  "우와~~ 멋지다. 어쩜 집들이 저리 작을까? 저것 봐 저수지도 한눈에 보이네." 소연은 두 손을 펼치고 나풀나풀 풀숲을 뛰어 다녔다.
  "너는 멋진 세상을 가졌구나. 나도 나만의 세상을 갖고 싶다." 자석은 소연이 좋아하니 우쭐해졌다.
  "팟정이 밑으로는 너 가져. 나는 팟정이 윗 마을로만 내 세상으로 할 것인게."
  "고마워. 팟정이 밑으로 저수지랑 정자는 내거야. 그곳은 내 허락을 받고 봐야 된다."
  "하늘도 나눌 거여?"
  "하늘...... 음... 그건 같이 갖자. 네가 보는 하늘을 나도 보고 내가 보는 하늘을 너도 보는 거야."
  소연과 자석은 풀섶에 하늘을 보고 누웠다.
  "학교에 가면 뭘 배우고 싶니?" 소연은 학교에 가고 싶다던 자석의 말을 떠올리며 물어보았다.
  "다. 난 뭔든 다 배우고 싶당게. 목사님 말씀이 세상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구만. 나 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도 많다고 혔어. 크믄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며 살어야 헌디야. 근디 난 가진 것도 없는디 나눠야 한다고 허니께 좀 억울하기는 혀."
  "목사님이 내게도 그러셨어. 나누며 사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희망을 가져 이렇게 넓고 멋진 세상을 가졌는데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니? 내가 응원해 줄게."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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