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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복숭아꽃곧 복사꽃이 필거에요
소선녀 (수필가/상정보건진료소장)

고향집 뒤꼍에 복숭아나무가 생각나요. 복숭아를 따먹은 기억보다, 꽃이 피었을 때 그 화사한 정경이 더 선명해요. 온 세상이 달콤하게 변했지요. 그 곁에 장독대가 있었는데, 그곳에 드나들며, 살림을 야무지게 하시던 엄마 얼굴도 환하게 빛났었어요.

  바자회에 갔다가 식혜를 보고 엄마가 생각났어요. 입맛을 다시며, 맛있게 드실 모습이 떠올라, 한 병 샀지요. 곧바로 친정으로 갔더니, 엄마가 깜짝 반기셨어요. '아, 잘 왔다. 내가 똥을 쌌구나.' 이불을 들쳐보니 이곳저곳 변이 묻어있고, 바지는 벗겨져 방바닥에 떨어져 있네요. '엄마, 내가 잘 왔네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보행기를 붙잡고도 한 걸음 떼는 것을 무서워하는 엄마를 부축해서, 욕실로 갔어요. 물의 온도를 뜨뜻하게 맞춰, 뽀득뽀득 엄마를 씻깁니다. 어린 나를 이렇게 보살피셨을 엄마, 그 기억은 없지만, 손주들을 끔찍이 예뻐하시는 것을 보며 알았어요. 산후조리를 해주실 때, 아기가 놀라지 않도록 폭 안아서 씻겨주시던 엄마!

  옷을 갈아입혀서 침대에 눕혔더니 개운해 하십니다. '니가 오길 잘했다. 니 아버지가 오시면 얼마나 걱정스럽겠냐' 엄마는 내심 아버지에게 미안하셨던 모양입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편마비가 온 엄마는 자주 넘어지셨어요. 고관절이 세 번이나 골절되어, 마지막 수술을 하셨을 때는 기력이 소진되었어요. 욕창이 생기고 기저귀를 찬 엄마를 집으로 모셔왔지요. 병원에 두면 영영 못 일어나실 것 같아서요. 다행이 욕창도 낫고, 손잡이를 잡고 일어설 정도가 되셨고요.

  그런데 치매증상이 온 엄마는 아버지만 찾으십니다. 딸네 집에 오셔서도 저녁때만 되면 아버지 언제 오시냐고, 성화를 댑니다. 며칠씩 계시면 좋으련만, 집에 가서 자겠다고 끝내 고집을 부립니다. 그런 어머니를 돌보시려고, 아버지는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셨어요. 꼼짝도 못하고 엄마에게 매이게 된 것이지요. 요양보호사를 신청해서 그 시간만이라도 쉬시면 좋으련만.

  그러다가 집안에 일이 생겨, 아버지가 집을 자주 비워야하는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아빠에게 말씀드렸지요. '한두 달만 엄마를 요양기관에 맡기면 어떨까요? 잘 아는 곳이 있는데 믿을만한 곳이에요. 그곳은 엄마를 더 편하고 안전하게 돌봐줄 거예요.' 아버지도 엄마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으니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며칠 뒤에 아버지는 안 되겠다고 하시네요. 엄마가 안가겠다고 하신다고요.

  세탁기를 돌려놓고 구석구석 청소를 하는데, 옷걸이 걸린 아버지 와이셔츠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래 입어서 색이 바래고, 깨끗이 세탁되지 않아 목둘레가 누렇게 변색되었네요. 장롱을 뒤져보니 와이셔츠가 넉 장 있는데, 모두 후줄근해진 것들뿐이었어요.

  아버지 셔츠를 모두 아파트 앞 세탁소에 맡기고, 새것을 사다가 다림질해서 옷걸이에 걸어 두었어요. 입고 나가실 날도 많지 않으시겠지만 요. 바쁘게 종종대는 딸을 눈으로 쫒아 다니는 엄마에게 다가가, 볼에 뽀뽀를 하며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딸이 저에게 해주는 것처럼 요.

  복사꽃이 환하게 핀 어릴 적 뒷마당이, 유난히 그리운 날입니다.

사진 : 나인권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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